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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충시설-백야 김좌진장군 생가지와 백야 김좌진장군 동상
현충시설-백야 김좌진장군 생가지와 백야 김좌진장군 동상
  • 김동성 기자
  • 승인 2020.08.24 16: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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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성출신 김좌진 장군, 일제 강점기 평생을 항일전투에 몸 바친 독립운동가

충남서부보훈지청에서는 국민들의 호국보훈 정신 함양 및 현충시설 활성화를 위해 관내 현충시설을 매월 선정해 소개하고 있는데 이달에는 ‘백야 김좌진장군 동상’을 선정했다.

충남서부보훈지청에 따르면, 홍성군 홍성읍 고암리 530번지(김좌진장군상 오거리)에 세워진 ‘백야 김좌진장군 동상’은 1979년 5월 8일 김좌진장군 동상 건립 추진위원회가 구성되면서 사업비 91,500천원이 투입돼 1983년 5월 31일 완공됐다. 동상은 장군이 31세 때 청산리 전투에서 일본군 가납연대를 섬멸시킬 때의 독립군 대장의 늠름한 기상을 표현하고 있다.

부대시설로는 장군의 동상 외에 청산리 작전도와 비둘기상인 부조좌대, 계단 향로 등이 갖추어져 있다.

이와 관련하여 홍성에서 해미로 가는 길목에 있는 홍성군 갈산면 행산리에 충청남도 시도기념물 제76호 김좌진장군생가지가 있다.

충청남도 문화재 해설에 따르면, 김좌진장군 생가지 성역화사업은 1989년부터 시작하여 10년 만인 1998년 1월 생가지 및 기념관까지 완공돼 충의정신(忠義精神)의 계승 발전을 위한 산 교육장으로 활용되고 있다.

독립운동가 백야 김좌진 장군(1889∼1930)은 홍성 출신으로 대한제국 후기에 활동했던 독립운동가다.

1905년에 호명학교를 설립해 근대화에 앞장섰으며, 을사보호조약이 체결된 이후에 대한협회, 기호학회, 청년학우회 등의 간부를 지냈다.

1913년에는 대한제국 광복단에 가담하여 독립운동 자금을 모으다 일본 경찰에 체포돼 3년간 복역한 후 1917년 만주로 건너가 북로군정서를 조직하여 총사령관으로 1,600여 명의 독립군을 양성하며 13년간 평생을 항일전투에 몸 바쳤다.

1920년 10월 청산리전투에서 일본군을 섬멸하고 승리한 것은 독립 전투 역사에서 승리의 금자탑으로 기록되고 있다.

1929년에는 한족총연합회를 조직하고 주석이 되어 만주에 거주하고 있는 우리 동포의 교육과 민생에 주력하는 한편, 중국에서 활동하던 항일 세력과 연합해서 대일 항전을 준비하던 중 1930년 김일성의 사주를 받은 박상실에게 암살당했다.

이후 1962년 대한민국 건국공로 훈장을 받았고, 이를 기리기 위해 홍성군 홍성읍 고암리 530번지(김좌진장군상 오거리) 홍성역 앞에 동상이 세워졌다.

한편, 최근 현충시설의 발굴 및 보존에 대한 요구가 증가하고 있으며, 국내·외 현충시설에 대한 관리부실에 대한 문제가 지속적으로 제기되고 있는 가운데 박완주 더불어민주당 의원(천안을)이 지난 12일 '공훈선양시설의 지정 및 관리에 관한 법률안 제정안'을 대표 발의 한 바 있다.

박 의원은 "독립운동, 국가수호업적, 민주화운동시설에 대한 지정과 관리를 강화해 국내·외에 산재한 공훈선양시설의 훼손과 멸실을 막고 체계적이고 효과적인 보존과 관리를 통해 국민들의 나라사랑 정신과 민주주의 의식을 높일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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