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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향기]봄을 먹자
[사람향기]봄을 먹자
  • 전미해 기자
  • 승인 2021.03.15 11:4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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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맘때면 뭔가 입맛을 돋워 줄 새롭고 산뜻한 음식을 찾게 됩니다. 비타민이며 무기질이며 영양이 가득한 봄나물이 자연스레 생각나는 봄입니다.

“어르신이 냉이가 많은 곳을 일러주셨어요. 함께 갑시다.”

주말을 맞은 13일 오후 동네 아주머니들 몇몇이 그렇잖아도 요새 봄바람 살랑살랑 불어대 마음이 싱숭생숭 했는지 가자니까 마다하는 사람 하나 없습니다.

바닥에 주저앉아도 좋을 만큼 최대한 허름한 옷을 입고 비닐봉지 하나에 과도를 연장이라고 챙겨 집을 나섭니다.

목적지를 향해 당진 구룡마을 입구를 들어서서도 한참을 구불구불하고도 작은 길을 달려가는 길목에 하이얀 매화꽃이 후루룩 피어나고, 저쪽 맞은편으로는 대결이라도 하듯 홍매화가 덩달아 피어나 눈으로 봄을 기분 좋게 먹습니다.

햇살이 얼마나 따사롭던지 차창을 활짝 열어 봄바람 콧구멍에 원 없이 넣어가며 목적지에 도착했는데 밭주인 김상범 씨가 키우는 개와 닭이 사건사고를 일으킨 모양입니다. 주인 없는 밤사이 묶인 개 앞을 얼씬거리며 깝죽댔는지 물려 죽은 것으로 추정되는 닭 한 마리를 야외에 설치해 놓은 가마솥에 삶느라 희뿌연 연기 속에서 신선처럼 나타나 우리 일행을 반기며 안내해줍니다.

“작년에 꽃이 핀 냉이를 놔뒀더니 따로 씨를 뿌린 것도 아닌데 겨우내 실컷 캐 먹고도 아직도 이렇게 많습니다. 아이고, 냉이를 과도로 캐려구요? 허허허. 냉이는 뿌리 채 캐야 하니까 이 호미로 하세요.”

농장에 줄지어 내걸린 호미를 철없는 아주머니들 손에 쥐어줍니다.

밭을 휘이 한번 둘러보니 냉이가 지천에 널렸습니다.

“히야! 냄새 쥑이네요.”

“이거 냉이 맞나요?”

“그건 민들레에요. 같이 먹으면 됩니다.”

“그건 씀바귀네요.”

“이건 냉이가 아닌 것 같기도 하고, 맞는 것 같기도 하고....”

코에 대고 킁킁 냄새를 맡아보지 않으면 냉이를 닮은 풀과 헷갈려 캐면서도 고개를 갸우뚱 하는데 동행한 지인이 말해줍니다.

“봄나물하고 유사한 독초를 잘못 먹어서 식중독이 생기는 몇 가지가 있어요. 예를 들면 원추리랑 독초인 여로가 비슷하거든요. 또 산마늘이랑 박새가 그렇구요, 곰취랑 동의나물도 구별을 잘해야 돼요. 꽃이 피기 전에는 진짜 구별하기가 어렵거든요. 이 밭에는 없으니까 걱정하지 말고 캐세요. 요즘 봄의 흥취를 돋워주는 냉이, 달래, 쓰지만 몸에는 정말 좋은 씀바귀 뿐 아니라 먹을 수 있는 나물종류가 정말 많아요. 피를 맑게 해주는 돌나물, 당근 대신 쓰던 원추리, 왕고들빼기, 벼룩나물, 돌나물, 두릅지칭개, 뽀리뱅이, 망초, 명아주, 벼룩나물, 쇠별꽃 나물이 안 되는 것이 없어요. 이 나물들 거저먹고 1년을 살아갈 면역력을 얻으라는 신의 선물이 아닌가 싶어요.”

제주시 우도가 친정인 지인이 남편 직장 따라 강원도에서 사는 동안 사계절 산과 들을 누비며 직접 채취해 먹으면서 자연스레 알게 됐다는 나물종류들을 읊어대는데 전문가를 대하는 것 같아 든든합니다.

그렇게 일제히 가져간 비닐봉지마다 한 가득 채워져 밭 주인장과 작별을 고하는데 “흙이 묻은 채 가져가면 아파트 하수구 막힌다”며 지하수 철철 넘치고 있는 커다란 다라이에 쏟아 친절하게 행궈주기까지 합니다.

집에 돌아와 잘 다듬어 데쳐낸 냉이는 조물조물 무치고, 그 물에 된장 휘이 풀어 국을 끓이고, 냉이, 양파, 당근, 깻잎 숭숭 썰어 넣고 전을 지져 식탁에 올리는데 봄 냄새가 진동을 합니다. 요즘 입맛 없어하던 막둥이 녀석이 입을 끝도 없이 벌려대 다음 주말에는 쑥을 캐러 가야겠다는 다짐을 하게 만듭니다.

겨우내 움츠려있던 몸속 기운이 봄에 적응을 잘 못해 춘곤증을 느끼고 입맛이 없을 때는 그저 새콤쌉쌀한 봄나물을 먹는 것이 최고의 보약이 되는 것 같습니다. 다가오는 주말에는 신이 들판에 보란 듯이 흩뿌려 놓은 면역력을 직접 거두어 보는 건 어떠신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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