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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향기]소중한 전통문화, 자자손손 이어갈 수 있도록
[사람향기]소중한 전통문화, 자자손손 이어갈 수 있도록
  • 전미해 기자
  • 승인 2023.09.19 13:2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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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은 한낮 더위에 긴 소매 대신 짧고 시원한 옷을 찾아 입게 돼 여름인 듯 가을인 듯 살짝 헷갈릴 즈음, 마트 진열대에 연지 곤지 찍은 새 신부 마냥 발그레한 얼굴로 수줍게 앉아있는 홍로를 대하고 보니 어느새 가을의 중심에 와 있었구나 자각하게 됩니다. 자꾸 미루던 옷장정리가 미련 없이 시작되겠네요.

이렇게 훅 우리 곁에 성큼 다가선 가을! 가을의 달빛 가운데 유난히 밝고도 가장 좋은 밤이 추석이라지요. 요즘 운동하면서 바라다 본 밤하늘 달이 아무리 먹어도 먹어도 다음날 아침이면 요술같이 제자리 찾아가는 청소년들 배꼬리 마냥 홀쭉한데 이제 하루하루가 지날수록 중년 아주머니 배가 맹세코 물만 먹었다는데도 요상하게 두둑해지는 것처럼 그렇게 차오르겠네요.

어릴 적 추석이면 어머니는 아직은 시기가 일러 덜 여문 벼를 쪄서 말린 후에 절구통에 넣고 찧어 밥을 지었습니다. 색깔이 누르스름하여 생으로 한 입 털어 넣고 오물오물 씹어보면 그 맛이 어찌 그리 구수하던지 “매일 이 밥을 해 달라”고 조르던 일을 잊을 수 없습니다.

추석날 아침이면 어동육서, 동두서미, 좌포우해, 고서비동을 읊어가며 자녀들에게 진설 방법을 알려 주셨던 아버지, ‘잘 빚어야 예쁜 딸 낳는다’며 정성을 다하여 빚으라시던 어머니! 매년 보름달은 여전히 떠오르는데 세월이 흘러 이제 더 이상의 가르침을 받을 수 없게 되었습니다.

타지에서 학교를 다니고, 직장을 다니고, 출가하여 추석명절이라고 고향집을 찾을 때는 어김없이 부모님이 버선발로 반겨주셨는데, 그것이 너무나 당연한 줄 알았는데 이제 고향집에는 더 이상 반겨줄 부모님이 계시지 않다는 사실에 가슴이 먹먹해지는 추석입니다.

차례상에 놓을 밤 껍질을 치시던 아버지의 손길은 수 년 째 온데 간 데 없고, 부엌을 분주히 오가시던 어머니의 발걸음은 요양원 차디찬 휠체어에 묶였습니다.

바로 옆 마을회관에서 출발한 농악대가 꾕과리, 징, 장구소리 요란하게 울리며 동네 한 바퀴를 휘 돌때 극 소심했던 나마저도 껑충거리며 뒤를 따르던 일도, 어려운 형편 가운데도 귀여운 막내딸에게는 어김없이 마련해 주셨던 추석빔도, 몇 개 사먹으면 될 것을 집에서 손수 몇날 며칠에 걸쳐 힘들게 한과를 만든다고 투덜거리던 일도 이제는 소중하고 아름다운 추억으로 남았습니다.

추석을 즈음하여 지역 곳곳에서 줄다리기, 씨름, 활쏘기, 민속놀이, 공연 등 다양한 행사가 준비돼 있습니다. 자녀들과 딱지도 치고, 공기놀이도 하고, 윷놀이 하고, 연도 날려보고, 제기도 차보고, 투호놀이, 팽이치기도 적극적으로 참여해 보면서 자녀들에게 추억을 안겨주면 좋겠습니다.

우리민족의 깊은 전통과 가치를 알고 자신들의 문화유산을 자자손손 이어갈 수 있도록, 수확에 대한 감사를 표할 줄 알도록 자녀들에게 알려주고 가르쳐야 할 거룩한 책임이 우리에게 있습니다. 우리네 부모님께서 우리에게 그 책임을 다하셨던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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