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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향기]지켜야 할 자리
[사람향기]지켜야 할 자리
  • 전미해 기자
  • 승인 2021.09.13 11:1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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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 5시가 되면 조용하고 어두웠던 실내에 조명이 환히 밝혀지고 음향시스템이 가동되며 설교자의 진행이 이어집니다. 그런데 어느 한 날 시간이 되어 설교자가 강단에 섰지만 조명도 켜지지 않고 마이크도 먹통입니다. 짧지 않은 시간동안 침묵이 흐르는 가운데 눈치 빠른 몇몇 사람의 움직임으로 임시방편 가동은 되었지만 전문가가 자리에 없다보니 소리가 컸다 작았다 요동을 해도 어찌하지 못한 체 대충 마무리가 되었습니다. 누군가 꼭 지켜야 할 자리를 지키지 않아 여러 사람이 당황합니다.

어느 날은 어찌된 일인지 풀숲에 있어야 할 귀뚜라미가 고층아파트까지 올라와 즐겨 사용하는 안마장화 속에 들어가 있어서 화들짝 놀라게 하는가 하면, 또 어떤 날은 아침식사를 준비하려던 참에 전날 밤 씻어 말리느라 들여놓지 못한 냄비 뚜껑 위에 여치가 앉아 황당하게 합니다. 녀석들이 있어야 할 곳, 풀숲을 벗어난 귀뚜라미와 여치의 최후는 어찌 되었을지 상상에 맡깁니다.

이른 아침 매일 같은 시각, 낡은 트럭에 편의점 앞 상자 폐지를 주어 담는 분을 봅니다. 결코 많은 돈은 아니지만 한 가정의 가장의 자리를 지켜내려는 최선의 몸부림을 봅니다.

산더미 같은 쓰레기봉투를 차에 힘차게 던져 넣고는 그대로 차 뒤 켠에 매달려 가까운 다음 장소로 이동하는 환경미화원도 봅니다. 출근해서 대하는 곳이 냄새나는 쓰레기더미지만 나와 가족을 지키는 자리일 뿐 아니라 시민들에게 쾌적한 환경을 만들어줍니다.

한 손에 싸리비, 또 다른 한손에 쓰레기받이를 들고 어김없이 아파트를 누비며 철부지 어린아이, 혹은 마음이 어린아이와도 같은 어른이 무심코 버린 쓰레기들, 개념 없는 주인과 함께 나온 강아지의 뒤처리까지 뒹구는 낙엽과 함께 쓸어 담습니다. 상식을 벗어난 주민들이 마구 버린 쓰레기를 담으며 불평이 왜 없겠는가마는 묵묵히 자리를 지킵니다. 이분들이 자리를 지켜 주민들은 늘 정리정돈 된 환경에서 생활합니다.

여기저기서 부릉부릉 차에 시동을 걸어 자신이 있어야 할 곳, 지켜야 할 자리를 찾아 힘차게 출발합니다. 

주말인 11일 이른 아침 대부분의 사람들이 늦잠을 즐기는 주말이지만 한 주간 마지막 배송을 위해 크고 작은 택배 상자를 트럭에 옮겨 담느라 제법 선선해진 날씨에도 주르륵 흘러내리는 땀을 훔치는 뒷모습을 봅니다. 이분들이 자리를 지켜 누군가의 애타는 기다림을 해소해줍니다.

게임에 빠진 주부가 컴퓨터 앞을 지키느라 정작 자신의 아이를 지키지 못했다는 안타까운 소식도 간간이 전해지는 요즘, 자신에게 주어진 일, 맡겨진 자리, 있어야 할 곳을 지키는 일이 소중함을 깨닫습니다.

추석이 바짝 코앞으로 다가왔습니다. 추석 연휴동안에는 편집장 자리 잠시 내려놓고 든든한 맏며느리의 자리, 재롱부리는 막내딸 자리를 지켜야겠습니다. 여전히 코로나19가 극성인 탓에 온가족이 다함께 한자리 모이지는 못하지만 마음만은 서로 정을 흠뻑 나누며 행복하고도 건강한 추석 보내시기를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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